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시 도시정보 및 여행지 Ulaanbaatar (Улаанбаатар хот)

몽골지역 Aimag 2010. 4. 20. 01:42


울란바타르시는 해발 1350m에 톨강 강가, 복드산 기슭, 몽골국 중앙지대에 위치한다.
울란바타르시 면적이 47만 헥타르로 몽골 총 면적의 0.3%를 차지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시의 역사는 몽골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싸움, 독립국가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의 역사이자 몽골인들의 상징이다.울란바타르시는 건축물, 도로망, 경제, 관광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반면 전통과 역사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행정구역:
9개 구(두우륵), 121개 동(허러)이 있다. 해마다 10월 9일을 ‘수도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수흐바타르 구
바양걸 구
바양주르흐 구
바가노오르 구
바가항가이 구
날라이흐 구
칭길테 구
항 오올 구
성긴 하이르항 구


연혁:
울란바타르는 366년의 역사를 지닌 몽골의 수도로 정치, 상업, 문화의 중심지이다. 몽골의 수도는 울란바타르라고 명명하기 전에 <어르거> <이흐 후레 IKh Khuree:거대한 캠프> <니이스렐 후레 Niislel Khuree: 수도캠프> 등으로 불리웠다.

울란바토르시가 건립된 역사에 대하여 1841년 ‘귀중한 염주’ 사서에 기록되었다. 울란바토르시가 건립된 것은 17세기 몽골의 정치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짓고 있다. IKh Khuree(이흐후레)는 1640-1855년에 총 28번 이동하였다는 조사가 있다. 울란바타르시의 발전단계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누들링 어르거 1639~1778 (Нүүдлийн өргөө 1639~1778)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시의 역사는 몽골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싸움, 독립국가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의 역사이자 몽골인들의 상징이다.
울란바토르시가 건립된 역사에 대하여 1841년 ‘귀중한 염주’ 사서에 기록되었다. 울란바토르시가 건립된 것은 17세기 몽골의 정치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짓고 있다. Ih huree(이흐후레)는 1640-1855년에 총 28번 이동하였다는 조사가 있다. 울란바타르시의 발전단계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누들링 어르거 (1639-1778)
현재 어워르항가이 아이막의 부르드 솜의 지역에 차강 노오르 또는 시레트 노오르라는 지역에 1639년에 자나바자를 주지로 임명할 때 그를 위해 어르드 어르거를 설립한 것인데 여기서 현재 울란바토르시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본다. 1640-1778년 어르거’시가 ‘이흐후레’로 확장되었다.
어르거는:
- 몽골 라마교의 중심지
- 할흐 몽골의 정치의 중심지
- 국내외 무역의 주요 중심지의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어르거는 진정한 도시로 발전하는 새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흐 후레 1778~1910 (Их хүрээ 1778-1910)

 이 시대의 주 특징은 이흐 후레가 정착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이히 후레는 1778년 현재 울란바토르시의 중신지인 셀베 내천의 골짝으로 이동한 이후 거기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몽골의 건축가들은 절과 사원 건축에 전통건축학, 특히 ‘게르(전통가옥)’의 전통을 능숙히 활용하여 개발한 동시에 중국과 티베트의 건축 전통을 사용하였다.
19세기에 이흐 후레는 종교 중심지에서 몽골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주요 중심지, 또한 무역과 거래의 큰 중심지가 되어 진정한 도시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이흐후레의 총 인구를 15-20천 명으로 추측한다. 이흐후레시는 강당, 주웅 후레, 바롱 담노오르칭, 마이마시, 영사관, 담바다르자 등의 지역을 포괄하였다. 이흐 후레는 19세기 말에 몽골의 종교, 정치, 무역, 민족 및 사회적 중심지가 되었다. 

니슬렐 후레 1911-1921(Нийслэл хүрээ 1911-1921)

 

재건된 몽골국 수도가 된 시기다. 니슬렐 후레는국가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울란바타르 시 1921~ 현재 (Улаанбаатар хот /1921 оноос одоо хүртэл)

 

1911년 만주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찾은 몽골은 제8대 버그드 짜브장담바를 왕으로 추대했으며, <이흐 후레>를 몽골 정부의 중심지로 삼고 그 명칭을 <니슬렐 후레>라고 했다.
1924.10.29일 제14회 회의에서 인민혁명이 달성된 후 영웅인 “수흐바타르”를 기념하여 수도명을 니슬렐 후레시에서 ‘붉은 영웅’이란 뜻의 울란바타르을 국가 수도로 재입법시켜 이름을 울란바타르시로 개칭하였다.
1954년 처음 울란바토르시의 20년 장기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여름 몽골에서 다정당이 참여한 민주적 선거가 처음 실시되었다. 이 선거 결과 몽골에 첫 상임, 다정당 구성의 국회가 설립되었다.
1992년 제4회 새 헌법이 입법되었다. 몽골 헌법에 ‘몽골국의 수도는 바로 울란바토르시다’라고 지정하였다. 수도는 깃발과 상징이 있다.

한국과의 관계:
울란바타르 시는 한국의 수도 서울과 1995년 10월 6일 우호 협력을 다지는 자매결연을 맺음으로써 양국의 수도는 역사적 관계를 시작했다. 이를 기념하여 1996년 울란바타르 시 중심부에 총 길이 2.1km의 ‘서울의 거리’가 조성되었으며, "서울정" 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울란바타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기후:
울란바토르시는 날씨가 사계절이 있다.
년간 평균 강수량 242.7mm ,년간 습도 69% ,평균 기온 2.2C
봄은 5월 중승까지 계속되며 날씨는 평균 5도이다. 봄에는 나무에 싹이 트며, 꽃이 피는 따뜻한 날도 있는 반면에 싸늘한 날도 있다. 갑자기 눈보라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름에는 평균기온이 15도로 따뜻하다. 여름에 비가 오는데 가끔은 우박도 내린다.
가을에는 따뜻하고 밝은 날이 오래 지속된다. 평균기온이 7도이다. 나뭇잎이 노랗게 단풍 들며, 날씨가 좀좀 추워져 눈이 온다. 울란바타르시는 겨울이 특히 춥다. 평균기운이 영하 19도다. 겨울에 비록 춥더라도 맑고 밝은 날이 많다.

인구:
울란바타르시에는 할흐, 보리아드, 더르워드, 차하르, 허텅, 어얼드 등 여러부족이 거주하고 있다

2010.02 현재 울란바타르시 인구수는 1백만 명이 되었다. 이에 여성이 472,670명, 남성이 442,861명이다. 인구밀도는 1km
2당 195명이다. 울란바타르시 총 인구의 67%가 35세 미만의 청소년층이며, 이의 30%가 16세 미만의 어린이다. 

교육:
울란바타르시에 국립학교가 94개, 사립학교가 84개가 있으며, 학생 수가 182,725명이다. 유치원이 170개가 있는데 34,884명의 유아가 학교 전 교육을 받고 있다. 울란바타르시에 전국 학교의 25%, 학생의 32.8%, 유치원생의 25.9%, 교사 등 교직원의 40% 이상이 있다. 이는 몽골의 교육증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울란바타르의 지리
울란바타르는 해발 1,351m에 위치하며, 이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체체궁산은 해발 2,257m에 이른다. 인구는 2003년에 869,912명으로 집계되어 있으며, 35세 미만이 68%를 점하고 있으며, 16세 미만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헨티 산맥의 마지막 지산이자 자연보호구역인 버그드 항 산의 남쪽, 톨강, 셀베 강, 돈드 강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 복그드 항 산:수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치"를 상징한다.  
울란바타르 시는 분지 지역으로 동서남북의 네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쪽의 산은 몽골인이 신성하게 여기는 성산 중의 하나인 <복그드 항> 산이다. 한국인들은 이 산을 ‘복드 산’이라고 부른다. 버그드 산을 둥찡가랍이라고 이르기도 하는데, 이 말은 “남쪽의 수호자인 흰조가비”라는 티베트어로 수신의 왕을 이르는 말이며, 이 산의 수호신을 지칭한다. 12-13세기 몽골 헤레이드 아이막의 지도자 왕 칸은 이 산을 신성시하며 제의를 지내고 항(왕) 산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의 북쪽 톨 강의 계곡에 약 360년 전부터 어르거 즉, 이후 후레 시를 세우고 계속해서 복그드와 왕, 귀족들이 거주해 살았기 때문에 이산 이름에 복그드라는 단어를 더하여 복그드 항 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복그드 항’ 산의 주인은 신화적인 새인 항가리드 새이다. 항가리드는 새의 날개와 인간의 몸을 하고 뱀을 잡아먹는 새의 왕이며 태양의 새이다. 이 새는 인도의 지고의 신 비쉬누의 탈것인 ‘가루다’라는 새에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항가리드가 뱀을 쥐고 있는 것은 천상의 힘이 지상의 힘을 제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산의 형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했는데, 바위 위에 앉은 항가리드 새의 모습을 한왕과 왕비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형상 같기도 하고, 사슴을 탄 백발의 노인 또는 눈 덮인 산에 흰 사자가 누워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산은 1778년 이흐 후레(지금의 울란바타르 시)의 대신 윤등도르찌가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으며, 만주 정부의 승인을 얻어 입산제한 구역으로 정하고 산의 이름을 ‘복그드 항’ 산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 복그드 항 산을 자연보호지역으로 삼고 가장 높은  두 봉우리를 투셰공과 체체공이라는 작위를 내려주고, 해마다 50랑의 옘부(약 1.9kg의 은괴)로 녹을 주도록 했다고 한다.
이 산의 남쪽으로는 만즈쉬르(문수보살) 람 사원이 있으며, 이 절은 1750년에 13명의 탕구트 스님들이 와서 지은 절로 사원이 번성했을 때는 20여 개의 전과 350여 명의 스님들이 생활했다.
1930년 폐허가 될 때까지 의학, 천문학, 철학 교육이 이루어졌던 지성의 산실이었다.
이 산의 잘라아트 어귀의 끝에 있는 재승 산의 남쪽에는 고대인의 주거지가 있으며, 이흐 텡게르 입구 동편의 바위에는 독수리 벽화 등 고대와 현대의 역사, 문화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1995년부터 대통령의 칙령으로 복그드 산에서 국가적인 대제를 지내게 되었으며, 그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6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동ㆍ서ㆍ북쪽의 산들
성긴 하이르항 산:수도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용기(용맹)을 상징한다.  
이 산은 숲과 나무가 드물고 바위와 암석이 많은 위용있는 산이다. 이 산의 주인은 푸른 소를 탄 푸른빛의 백발노인으로 술을 좋아한다고 하여,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 서쪽 성긴 하이르항의 산신인 이 노인에게 먼저 술을 올려드린다고 한다. 이 산의 형상을 말할 때 대 군사를 이끄는 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칭겔테 산: 수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식을 상징한다. 
이 산에 대한 전설을 보면 제자들에게 경전을 가르치고 있는 나이 많은 사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하며, 스님을 주인으로 하는 산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전설대로 이 산에는 수도하는 스님들이 살면서 책을 저술하는 일들이 많았다.

바양주르흐:수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재물을 상장한다
이 산은 동쪽 평원으로 톨 강이 흐르고 숲과 나무가 빼곡히 자란 아름다운 산으로, 산정을 올라서면 울란바타르 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산의 산신은 붉은 분홍빛 얼굴에 비단을 걸치고 무서운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이 산신은 모든 사물을 자신의 권력 안에 넣고 물질을 비처럼 내려준다고 여긴다.


- 대암(大岩) 이태준 기념 공원
울란바타르의 남산 버그드 산자락에는 이태준이라는 한국인을 기리는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대암 이태준(大岩 李泰俊)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1911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고 안창호 선생이 조직한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하여 ‘기독교의원’에서 일하다가 1914년 몽골로 오게 되는데, 몽골 입국의 동기는 그의 처사촌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냈던 김규식의 권유 때문이라 한다.
김규식은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매우 다양하고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벌인 인물로,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다. 그 동기는 일제의 종교-정치적 탄압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태준도 이와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1911년 일제는 민족운동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소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을 조작해 대대적으로 국내 인사를 잡아들인다.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기소자 123명 중 94명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하는데, 기독교사에서는 이를 기독교의 최대 박해사건으로 본다. 일제는 ‘선민회’ 중심의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고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선교사를 추방할 목적으로 사건을 날조하여 민족주의자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규모 핍박을 자행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사 김규식, 몽양 여운형 등의 많은 기독교계 민족주의자들이 중국 망명 길에 오르게 된다.
이태준은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 몽골 후레(현재 울란바타르 시)로 와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하고, 마지막 황제인 제8대 버그드의 주치의로 일했다. 그는 병에 신음하는 일반민들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1918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당시 몽골의 인구가 65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인구가 이렇게 적었던 주원인은 지배국 청나라가 정치적 목적으로 전개했던 불교정책과 이민 정책, 성병 확산에 있었다. 이태준은 몽골인들에게 엄청나게 퍼져 있던 성병을 퇴치하는 데 앞장섰으며, 1919년에는 몽골로부터 ‘에르덴오치르’라는 최고 국가훈장을 받게 된다.
김규식은 1920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 독립단, 고려혁명군 조직에 참여하고 미국, 중국, 소련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한다. 이태준 역시 몽골에서 인솔을 베풀며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며 지내던 중 1921년 2월, 38세 나이에 친일적인 군대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되고 만다. 그의 묘는 울란바타르의 성산 버그드 산에 있다고 하나 현재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스크바에서 레닌이 주최한 만국무산자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여운형이 울란바타르를 경유하여 모스크바로 갈 때 그의 묘에 참배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1921년 11월 소련 이르쿠츠크에서 ‘극동피압반민족회의’가 열린다. 이때 여운형을 선두로 김규식, 나용균 등 30여 명이 이 회의에 참가하게 된다. 이들 일행은 상해를 떠나 만주를 통과하려고 할 때 일본 경찰이 미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예정된 코스를 변경하여 몽골을 통과하게 된다. 이때 이태준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김규식의 말에 따라 일행이 그의 묘소를 참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애국적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국정부는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지자체,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의 구조

울란바토르시 시장의 사무국은 바로 그의 비서실이다.
시장 비서실은 울란바토르시민의회 및 시장에게 전문적인 자문 및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시장의 공약의 시행을 관리하며 시민들에게 가깝고, 융통성 있는, 창조적이고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장 비서실은 7개의 과, 1개 참모부의 조직으로 활동한다. 또한 해당부문의 활동을 지도·담당하여 정책, 결정을 수립·시행하는 24개 산하기관 및 출연기관이 있다.
울란바토르시 시장
시장 자문회

부시장

시장 사무국
시장 비서실장
1. 비서실   1. 행정관리과
2. 재산청   2. 도시개발정책계획과
3. 투자청   3. 재경국거과
4. 경찰청   4. 사회정책과
5. 보건청   5. 대외협력과
6. 교육과학청 6. 법률과
7. 문화예술청 7. 군본부
8. 통계청
9. 사회보험청
10. 체육위원회
11. 노동사회복지청
12. 청소년청
13. 도시계획학술설계원
14. 기록청
15. 비상사태청
16. 전문감사청
17. 세관청
18. 판결시행청
19. 주민등록정보청
20. 토지청
21. 가축병원청
22. 식품농업청
23. 정보기술청
24. 도로청
25. 환경보호청

산업단지:

울란바토르시 힙스유한책임회사

1961년 몽골공화국 СнЗ 580번 결정에 의해 울란바타르 힙스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되었으며 1972.05.06 개업하였다. 카펫, 카펫 제품의 생산, 판매업을 한다

거비주식회사

거비 회사는 세계품질보증기관에서 1994, 1997, 1998년 제품품질을 보증하는 “Global Qualify Mangemet“ 금상을 3, 1997, 1999세계우수판매자 클럽에서품질상을 수상, 2003년 스위스 제네바시 국제품질기관에서품질은 사업의 명예, ‘금서양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탈흐 치헤르주식회사 (제과공장)

탈흐 치헤르 주식회사의 수 많은 제품이 고객평가에 의해 해의 우수제품으로 연속 선발되어 왔다탈흐 치헤르주식회사는 몽골의 식품생산부문에서 선진기술에 의해 수년간 고급품질의 천연원료로 제품을 생산하여 고객에 대한 의무를 성공적으로 이행하여 왔으며고객의 믿음직한 협력자증서 No.1을 수여 받은 첫 회사이다.

오양그 히치

오양그 히치회사는 몽골 전통가옥을 생한, 조립, 판매 업체입다.

1994년 처음 바트 얼치트 에르덴유한책임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2000년 이후 오양그 히치 유한책임회사로 확장돼 활동하고 있다.

니슬렐 어르거 주식회사

1963조립식주택 반이란 이름으로 개설되어 1964년 장관협의회(그 당시 이름)의 결정에 의해조립식주택건설 사무처가 되어 자체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몽골 건축가들이 대형 패널식 건축기술을 터득하여 울란바토르시를 건축화시켜 주민들에게 편리한 주택을 제공하는 역사를 시작하였다. ‘니슬렐 어르거주식되사는 건축·공사를 시행할 뿐 아니라 건축자재를 생산한다.

화물수송:

울란바토르시는 여객과 화물 운송사업을 하고 있으며 국내외에 철도 및 항공 운송도 하고 있다.

투자환경(현황):
울란바토르시의 외교관계가 더욱 확보되고 있다. 국제 금융기관, 원조국, 협력도시들과 활발히 협력하여 시의 기반시설 개발, 공공시설 개선, 도시건설 관련 정책을 시행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현재 30여 개국의 50여 개 도시와 교류하고 있으며 이에 10여 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20여개 도시와 우호관계계약을 체결하였다.

도시명

비  고

러시아 모스크바시

울란바토르시장 체. 바아상자브 및 모스크바시 시장 유.엠.루지코프 등이 1996년 모스크바시에서 서명한 ‘울란바토르시와 모스크바시 간 우호협력 회의록’에 근거하여 양 도시의 관계가 모든 분야에서 활발하게 발전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시 은행과 모스크바 은행 간에 대리은행 관계가 성립되어 양 시청 및 관계기관에 협조하기로 두 은행이 협의하였다. 양 도시 관계에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된 행사는 2000년 울란바토르시에 있었던 ‘모스크바의 날’, 2001년 모스크바시에 있었언 ‘울란바토르의 날’이다.  이 행사는 양 도시뿐 아니라 양국 국민의 우호관계를 확보, 상호이해를 촉진, 문화, 예술, 경제 부문에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양 도시에서 평가하였다. 2001.10 울란바토르시 시장 엠. 엥흐벌드와 모스크바시 시장 유.엠.루지코프가 ‘2002-2004 울란바토르시와 모스크바시의 협력 프로그램’에 서명하였으며 이 프로그램에 반영된 협력사업을 부문별 관련기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중국 허흐 허트

1991년 울란바토르시의회의 전 실무국장 엘. 에느베시와 관계자들이 허흐 허트에 방문하여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 이후 양 도시의 협력사업이 모든 분야에 확보되어 가고 있다. 교육관련 인사들이 상호 방문하여 경험교류, 교사와 학생의 교류, 학교 간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조성하는 등 널리 협력하고 있다. 의료기관 및 의료 관련 인사들이 허흐 허트의 병원 및 대학에서 연수를 받아 상호 경험교류, 연구 등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허흐허트에서 종합검진 및 치료를 받는 몽골인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양 시청에서 민간단체들이 협력관계를 성립하는 데 지원·주선하고 있으며, 비즈니스미팅, 원탁회의, 제품 및 신기술 전시판매 등의 전시회를 주최하여 경제협력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행정부문에서 또한 협력하여 공무원의 경험교류로 시민의 권익관련 사업을 수행하여, 신속한 서비스 제공 방법 등 선진국의 행정제체를 연구·습득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시의 9개 구, 허흐 허트시의 9개 구에서 행정단위와 직접적 관계를 수립하여 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01년 양 도시의 우호관계성립 10주년을 공동으로 맞이하여 울란바토르시에서 허흐 허트의 날’을 개최했다. 또한 울란바토르시 시청 관계자들이 허흐 허트시에서 열리는 자오준 왕비의 문화예술축제에 매년 참가한다.

대한민국 서울시

1995.10.06 울란바토르시에서 울란바토르시 시장 체. 바아상잡, 서울시 시장 조순이 ‘몽골 울란바토르시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와의 자매결연 선언문’에 서명함으로 양 도시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양측이 도시개발 등 많은 분야에서 평등하고 효율적인 협력관계를 성립하는 가능성을 연구하여 상호 관심 분야에 광범위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 협조하여 왔다. 양 도시가 경제, 무역, 문화, 과학 부문에서 협력하여 행정업무 경험 및 정보를 교류, 관련 정부기관의 인사교류를 통해서 연수를 하고 있다. 또한 교육, 관광, 스포츠 분야 학생 및 청소년의 교류 전통이 생겼다. 서울시에서 몽골학생의 유학, 전문연수, 취업 등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2001년 서울시에서 울란바토르시에 ‘서울의 거리’를 건립했다. 2005년 울란바토르시와 서울시의 자매결연 10주년을 맞이하여 2005.05 서울시에서 ‘울란바토르시의 날’, 2005.09.5-9 울란바토르시에서 ‘서울의 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었다. 이 행사에서 양 도시 시민의 생활, 문화, 예술, 전통을 소개, 선진 신기술을 홍보·습득하는 등의 많은 종류의 광범위한 행사를 개최했다.

인천시

울란바토르시 시장 체.바트바야르는 한국 인천광역시의회 의장 성수와 관계자들을 2007.08 영접하여 면담하였다. 이 면담에서 울란바토르시 시장 체. 바트바야르와 인천광역시의회 의장 안성수가 자매결연문에 서명하였다.

일본 삿포로시

울란바토르시와 일본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호카이도의 중심도시인 삿포로시가 세계시장협회에 가입하여 그 이후 협력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왔다. 삿포로시는 국제동계도시시장협회의 설립을 제안한 도시 중 하나다. 삿포로시 시장이 동 협회 회장으로 삿포로시에서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덴버시

2001.11 미국 덴버시에서 울란바토르시 시장 및 덴버시 시장이 자매결연을 맺음으로 협력관계가 시작되었다.



외국인투자:

울란바토르시는 국가 수도의 자격을 항상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몽골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인 투자의 95%가 울란바토르시에서, 기타 5%가 타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울란바토르시에서 작년에 이루어진 투자의 60% 이상이 외국인투자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는 울란바토르시의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 현재 시에 활동하는 29천 개 업체의 2500개가 외국인투자회사이며, 중국투자회사가 50% 이상을 차지하여 건설분야에서 유력한 투자가로 울란바토르시에 당면한 문제 중 하나인 주택공급을 개선하는 일에 이바지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장기유상원조, 호주정부의 무상원조로 ‘울란바토르시의 공공시설 개선’ 사업을 시행하여 세계은행, 일본정부의 지원으로 ‘울란바토르시의 개발전략’ 사업, 일본국제협력단의 지원으로 ‘울란바토르시의 도로망 개선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모스크바시와 울란바토르시 종합계획의 일환으로 모스크바 타운을 건설하였으며, 일본정부의 무상원조로 학교 확장공사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총 1742억 투그릭의 외국인투자, 218억 투그릭의 현지인 투자에 의한 21개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중국, 캐나다,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국가에서 가장 많이 투자하였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산업·용역부문 지질학, 탐사, 광산 및 석유 분야에 43.8%, 경공업 분야에 5.6%, 은행재정 분야에 5.5%, 건축 분야에 3.5%, 동물성 제품 및 기타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몽골의 양호한 투자환경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안정 및 개방경제 법률적 양호한 환경 이웃나라의 큰 시장 중국 등 동남아시아, 북아시아를 러시아 및 유럽 시장에 연결하는 지름길 인구정착, 교통, 자연, 지리, 역사, 문명의 양호하고 독특한 특징을 가진 넓은 땅 교육률이 비교적 높은 인력 유용광물, 원료의 풍부한 자원 등.
 
역대 시장들 (Хотын дарга нар)


- Моононгийн Баяр 1924-1926 он
- Санжийн Батсүх 1926-1927 он
- Дуламжавын Гомбожав 1927-1929, 1930-1931, 1936-1939 он
- Ламжавын Мижиддорж 1929-1930 он
- Бадамын Цэдэндамба 1931-1932 он
- Өлзийн Равдан 1932.07.04-08.27
- Дансранбилэгийн Догсом 1932-1933 он
- Дамдингийн Чимэддаваа 1933-1936 он
- Лодойн Тавхай 1939.05-11
- Өлзийцогтын Мажиг 1940-1941 он
- Ломбодонойн Дамдин 1941. 07-08
- Эрэндоогийн Лувсаннаваан 1941. 09-11 он
- Содномын Шагдар 1942-1944 он
- Гүндийн Багаа 1944-1956 он
- Бадрахын Ламзав 1956 он
- Будын Батжаргал 1956-1959 он
- Санжийн Батаа 1959-1962 он
- Мангалжавын Лувсанчоймбол 1962-1965 он
- Догсомын Цэдэв 1965-1971 он
- Сономын Лувсангомбо 1971-1972 он
- Сүрэнжавын Балбар 1972-1976 он
- Очирын Цэнд 1976-1978 он
- Самбуугийн Мөнхжаргал 1978-1990 он
- Лхамсүрэнгийн Энэбиш 1990-1992 он
- Цэрэндэмбэрэлийн Баасанжав 1992-1996 он
- Жанлавын Наранцацралт 1996-1998 он
- Миеэгомбын Энхболд 1999-2005 он
- Цогтын Батбаяр 2005-2007 он
- Түдэвийн Билэгт 2007-2008 он
- Гомбосүрэнгийн Мөнхбаяр 2008 оны 12 сараа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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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youngjongtour.tistory.com BlogIcon 악의축 2010.03.25 1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몽골에 대한 정보들이 많군요.

    2008년에 몽골에 다녀왔었지요.

    비록 가는 당일 쿠데타가 일어나 많은 부분들을 여행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 Favicon of https://mongolro.tistory.com BlogIcon 몽골로 2010.03.31 2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몽골에 방문하신날 구테타가 아니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함에따라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반발세력들의 데모가 있었는데 과열현상으로 경찰들이 총기사용으로 사망자가 생겼죠.이날 자정12시부터 72시간 비상령 발동하였지요.

  2. 제니 2010.12.07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의 드릴게 있습니다 행정과 중에서 재경국거과, 군본부 라는게 무슨 말인지? 몽골어는 뭐하는지쯤 부탁하겠습니다.